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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승마와 교감 그리고 '인마일체'

승마인들 사이에서 자주 사용하는 표현이 있다. 바로 ‘인마일체’다. 사람과 말이 한 몸이 된 것 같은 완벽한 교감의 경지에 이르는 것을 보통 인마일체라고 부른다. 사실 말이 통하는 사람과도 서로 온전히 공감하기가 쉽지 않은데, 하물며 말이 통하지 않는 말하고의 교감은 얼마나 더 어려울까.

말을 타면서 한 번쯤은 고민하게 된다. 내 자신이 말하고 정말 교감하고 있는 것인지, 교감이라는 명목아래 내 욕심만 채우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 교감의 정도가 아닌 교감의 유무 자체에 대해 의심하게 된다. 마치 자신의 행동이 말을 괴롭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교감, 공감과 같은 감정의 연결과 흐름은 수학문제를 푸는 것처럼 공식에 대입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손 편지를 쓰는 것처럼 쓰고 지움을 반복하며 고민하는 것과 비슷하다. 나 혼자 끙끙 앓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생각하고 배려하며 끝없이 그리는 것이다. 상대로 향하는 내 마음과 행동의 방향이 잡힌다면 그 대상이 누구일 지라도 교감의 연결고리에 닿게 된다.

승마도 마찬가지다. 내 기분만 들 떠있는지, 교감이 잘 되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인마일체’로의 길로 접어들었다고 할 수 있다. 마음이 가지 않으면 걱정도 하지 않는다. 무관심 속에는 교감도 공감도 사랑도 없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 시인의 ‘꽃’中

 

하나의 시선, 하나의 관심이 모여 마음을 부풀게 한다. 말이 통하지 않는 말과의 ‘인마일체’의 경지, 무협지 속 비기나 뜬 구름 잡는 이야기가 아니다. 파트너인 말에 대한 관심을 이어나갈 때, 그것이 바로 인마일체의 시작이자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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